목소리를 듣는 일 : 김효나

  파괴하라고 그녀는 말하지 않는다.* 그녀는 말하지 않는다. 말을 한다기보다 그녀는 말을, 떨어뜨린다. 아주 자그마한 말의 조각을 띄엄… 띄엄… 떨어뜨린다. 아주 천천히, 잊을 만하면 떨어지는 말과 말 사이 깊은 침묵 속에서 나는 그것을 줍는다. 허리를 굽혀, 그 자그맣고 연약한 말의 조각을 향해 팔을 뻗는다. 조각은 너무 작아 잘 잡히지 않는다. 또한 잘못 건들면 그만 바스러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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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완의 [11월] , 시집 속의 음악 듣기

시인이 직접 해설하는 [11월]의 멀티미디어-아래 링크를 눌러주세요 “시그널 시는 텍스트, 기호, 숫자와 링크들을 통해 드러나는 일련의 복합미디어적 과정이다. 시그널 시는 그저 표시된다. 기술되지 않는다.” _ 성기완 1. November Theme (4:14) 시집의 메인 테마라 할 수 있는 실험적이 연주곡. 시집의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큐알코드를 찍으면 이 음악과 동기화되어 있는 영상물을 감상할 수 있다. 새벽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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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닿지 못한 섬에서 : 김숨

불빛들은 손에 닿을 듯 가깝다. 막배는 벌써 떠났고 불빛들이 점점이 떠 있는 곳에 닿으려면 날이 밝고 첫 배가 뜨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첫 배는 뜨지 않을 수도 있다. 첫 배가 뜨지 않으면 그다음 배도 뜨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그럼 막배도 뜨지 않을 것이다. 어둔 남색 바다는 무표정하지만 언제 느닷없이 표정을 바꿀지 모른다. 섬은 밀려가고 밀려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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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꿈꾸는 ‘시극’과 ‘시’라는 것 : 이지아

로트레아몽은 말했다. 그것은 두려움을 넘어서는 일. 더 잔인하고 대담하게 현실을 넘어서는 일 We just don’t care. 그것은 시이다.   들어가기 시인은 한 편의 시를 연기하는 배우일지도 모른다. 새와 돌과 해변과 대화하기도 하며, 밤의 시간이 되거나 도시의 뒷골목이 되기도 한다. 인간의 피를 필요로 하던 시대의 문학 전쟁은 시의 자리를 좁게 지정하였고, 시는 여러 색깔과 모양만을 보여주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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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언어 탐구 行 – 성주 청송 : 윤해서

미지 한 번도 감정에 휘말린 적 없는 벽은 평평하고 반듯하다 말이 사라져 두려움도 불행도 없는 곳에서 나, 열쇠에, 떨어진다, 선로를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네가 외면한 것 내가 볼 수 없는 것은 네가 보려고 하는 것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서 더욱 그렇다 어떤 일에 막히면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은 돌이킬 필요가 없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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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순 시인, 세계적 권위의 ‘그리핀 시 문학상’ 수상 : 시사저널 2019-07-06 : 최규승

살아서 죽은 자의 49일을 담은 『죽음의 자서전』 최규승 | 시인     지난 6월 6일 밤(캐나다 토론토 시간)은 한국 시문학장에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것이다. 한국 여성시의 아이콘이자 우리 시대 시의 전위에 서 있는 김혜순 시인이 ‘그리핀 시 문학상’(Griffin Poetry Prize)을 수상한 날이기 때문이다. 수상작은 『죽음의 자서전』(문학실험실, 번역시집명 Autobiography of Death). 이 수상 소식과 함께 시작(詩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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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에서 나한을 꺼냈다 : 진연주

나한은 부처가 아니다. 부처는 부처가 아니다.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한다. 말들은 부끄럽고 상황은 악화된다. 늙은 개는 매일 제 털을 뽑아낸다. 책을 펼쳐 낱낱의 장에 개의 털을 심는다. 개의 털을 심는 일이 내게는 말을 매장하는 일처럼 여겨진다. 말을 잃는 일은 그처럼 쉽다. 쉽지 않다. 4만 5천 원짜리 시집을 사달라고 조르는 일 만큼이나 쉽지 않다. 시집을 고르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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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당의 밤과 안개-영화 받아쓰기(ciné dictée) : 김태용

영화를 기억하는 시간과 영화 속을 헤매는 자들을 기록하는 시간은 결코 같지 않다. 영화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본다. 상영이 취소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입안에 있는 레몬사탕이 좀처럼 녹지 않는다. 내일은 더 추워진대. 추워진대? 두 사람의 대화를 따라 극장 안으로 들어간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우리는 외투를 벗는다. 두 번 접고 네 번 접어서 무릎 위에 올려놓는다. 그 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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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도키-자이푸르 : 한유주

내가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열리는 문학 페스티벌에 참가하게 된 것은 두 해 전쯤 북경에서가 처음이었다. 영국에 거주하는 에이전트가 메일을 보내 항공권만 자비로 부담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규모가 작은 페스티벌이라 숙박은 제공되지만 비행기 편까지는 어렵다는 얘기였다. 나는 그러마 했다. 2013년경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만나게 된 에이전트는 영어로 번역된 내 단편을 우연히 읽었다며 계약을 원한다고 했고 나는 서류를 제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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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있지 않은 있음과 없음-소설가 이인성과의 문학 방담 : 『Axt』 2018년 1-2월호 커버스토리

진정으로 있지 않은 있음과 없음 ― 소설가 이인성과의 문학 방담 배수아(이하 배) 꿈틀대는 것 같다. 당신의 모든 문장이. 백가흠(이하 백) 당신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소설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달리 말하고 싶다. 전체는 정적이면서도 그 안은 동적인 에너지들로 넘쳐나는 느낌이 들었다. 이인성(이하 이) 대뜸 그렇게 시작하니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좀 난감하고 쑥스럽다. 글쎄, 뭐랄까… 당연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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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는 눈을 멀게 하고, 이미지는 귀를 먹게 한다. 과연? : ‘사운드 이펙트 서울 2017’을 다녀와서

이현진 미디어는 세계의 목소리 그 지평 위에 군림해왔다. 심지어 그 세계를 뒤집으려는 혁명조차 전파의 자장 안에 있어야만 했다. 우리는 귀를 막고 TV를 볼 수는 있지만, 눈을 감고 TV를 들을 수는 없다.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2017. 12. 8 ~ 2018. 1. 31) 은 ‘보이는 것이 믿는 것이다’는 확고함을 허문다. 1 일상의 음향 기계는 조형물이 아닌 부속품이다. 하지만 그것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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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박나무 아래에서 (글) : 김선재

없는 것을 그리워하는 것이 우리의 오랜 병이었다. 병을 품고 바다로 간 것은 그 때문이었다. 흐린 바다에서 축축한 바람이 불어왔다. 우리는 오래 그 바람에 얼굴을 씻었다. 씻어도, 씻어도 물이 되는 꿈은 멀었다. 무게 없는 발자국들은 쉽게 지워졌고 해변은 지루하기만 했다. 낮에도 별은 여전히 낮은 지붕 위로 떨어졌지만 그걸 본 사람은 없었다. 보이지 않으니 아무것도 들리지도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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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몽드』 지가 본 오늘의 한국문학: “한국은 정령들을 간직하고 있다” / 플로랑스 누아빌 / 윤경희 역

∎ 일러두기 2016년도 프랑스 ‘파리도서전(3월 17일~20일)’에 즈음해, 『르 몽드(Le Monde)』 지가 도서전 주빈국으로 초대된 한국의 문학 현황을 개관하는 기사를 실어 이 자리에 소개한다. 이 기사는 『르 몽드』가 금요일마다 별면 특집으로 간행하는 ‘책들의 세계’ 2016년 3월 18일자 판의 6~7면 ‘자료(Dossier)’ 란에 게재됐다. 자신들 나름의 관점으로 작성된 이 기사의 문맥이 얼마나 올바르게 한국문학의 전체적 현황을 파악하고 세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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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누.나.비.바람 : 정재혁 포토에세이

        비.누.나.비.바람. 갈대밭이 있다. 갈대가 바람에 흔들린다. 비가 내릴 것 같다. 오늘은 우산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갈대밭은 아니다. 박물관 2층 창문 안에서 보는 바깥쪽, 옥상 조경이 갈대밭처럼 보일 뿐이다. 흔들리는 것이 갈대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억새일지도 모른다. 둘의 차이를 잘 모르겠는데, 갈대가 먼저 생각난 뒤에 억새가 떠오른다. 어쨌거나 창문 안에서 나는 바깥을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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