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있지 않은 있음과 없음-소설가 이인성과의 문학 방담 : 『Axt』 2018년 1-2월호 커버스토리

진정으로 있지 않은 있음과 없음
― 소설가 이인성과의 문학 방담

171206(04)

『Axt』 2018년 1-2월호 커버스토리


배수아(이하 배) 꿈틀대는 것 같다. 당신의 모든 문장이.

백가흠(이하 백) 당신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소설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달리 말하고 싶다. 전체는 정적이면서도 그 안은 동적인 에너지들로 넘쳐나는 느낌이 들었다.

이인성(이하 이) 대뜸 그렇게 시작하니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좀 난감하고 쑥스럽다. 글쎄, 뭐랄까… 당연한 말이지만, 독자가 어떤 소설을 대하는 관점이나 받아들이는 느낌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그리고 소설가는 다양한 독자들을 최대한 포용할 수 있길 바란다. 그 점에서 나는 그리 성공적인 소설가가 아닌데, 아무튼 내가 나름대로 독자와 마주한 방식은 인간적 내면의 다양성, 삶의 중층성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내가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민주화 시대 이전의 ‘닫힌’ 세계 속에서였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삶은 다양한 형태로 흘러갔다. 두 분의 표현은 아마도 그런 닫힌 세계 속에서도 어떤 꿈틀거림, 동적 에너지가 있었다는 걸 느꼈다는 뜻일지 모르겠다. 그렇게 느껴줬다면 고맙다.(웃음) 그 무렵의 깊은 고통에 공감해주는 것 같아서. 솔직히 나는 요즘도 고통의 깊이 없이 문학이 가능할까 혼자 생각하곤 한다.

얼핏 요즘 소설은 표면적인 것이라는 말처럼 들린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새로운 시대의 고통을 새로운 시대의 형식으로 그려낸 소설도 여러 편 읽었다. 요즘이라고 왜 고통이 없겠는가. 다만, 그 고통을 응시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지적하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고통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더 파고들어가는 게 아니라, 슬쩍 회피한 달까. 최근 소설들을 읽으면서 술술 참 잘도 넘어간다라고 느낄 때 특히 그렇다. 왠지 속고 있는 느낌? 고루하고 과장된 표현이긴 하지만, 글을 피로 쓴다던가 하는 그런 말 있잖은가. 그런 절실함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소설을 쓴다는 것은 허구적 언어를 통해 자기를 최대한 깊이 들여다보는 실험이라 여긴다. 자신을 이쪽으로 뒤집어보고, 또 반대로 뒤집어보고, 내가 나를 속이는 건 아닌지 다시 되돌아보며 지우고 다시 쓰기를 끝없이 반복하는…

당신의 소설을 읽다보면 끊임없이 자기 질문을 만들게 된다. 그것은 자기부정하고는 다르다. “거기에 있음이 진정으로 있지 않은 있음과 없음…”이라는 어떤 존재론적인 고민이 글쓰기의 동력이라고 봐도 되는 건가?

질문이 너무 거창하게 들린다.

아니다. 소설 안에 있는 문장이다. 어떤 의문들을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가 당신의 의도인지 묻고 싶었다. 책 안의 문장을 빌려오면 “안개처럼 있으면서 없고, 없으면서 있는” 그것은 무엇인가?

애초부터 의도였는지 아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그런 과정이 내 글쓰기의 밑바닥에 지속적으로 깔려 있었던 것 같기는 하다. 어쩌면 어렸을 때나 젊었을 때의 성장과 관련이 있을지 모르겠다. 나의 할아버지는 열정적인 계몽주의 농촌운동가였고, 아버지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학자 그 자체였다. 두 분 모두 진리가 있다고 믿는 분들이었다. 할아버지는 지독한 크리스천이어서 종교적 믿음이나 신념이 아주 뿌리 깊었지만, 아버지는 할아버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반항심 같은 게 있긴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교회도 잘 다니지 않았고. 그러나 학자로서의 또 다른 학문적 믿음과 이성에의 신념은 철두철미했다. 아버지는 역사가 발전한다고 확신하는 분이었다. 바람직한 길로 역사는 반드시 가게 되어 있다고, 우여곡절은 있더라도 제 길을 찾는다고. 그런데 나는 할아버지 같은 종교적 시각에도, 아버지 같은 학문적 시각에도, 동의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젊은 날의 나는 거꾸로 계속 반문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정말 그런가, 왜 그런가 하는 질문들로 나를 채웠던 거다. 결국은 그 끝나지 않는 물음이 허구의 소설, 문학으로 나를 이끈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허구의 소설을 쓰면서도 그럴듯한 기승전결을 갖춘 선적인 이야기는 쓰지 못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허구라는 게 원래 거짓말이란 뜻이지만, 그런 것은 진짜 거짓말만 하는 거란 회의가 들었기 때문에.

그럼, 당신도 그런 종류의 질문을 받아 본 적이 있나? “이 책으로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으신 건가?” 같은. 그건 작가에게는 정말 싫은 질문이다.

내용을 요약해 달라는 요구를 받은 적도 여러 번 있다.(모두 웃음) 반대로, 내 소설엔 이야기가 없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없는 소설이 어디 있는가? 다만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이 다른 소설들이 있을 뿐이다. 언젠가 다른 글에서도 쓴 적이 있는데 이야기라는 건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 시를 쓸 때조차 이야기를 피할 수 없다.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기억을 만들고 역사를 만들며 살아간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 보다 진정한 이야기를 엮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거부하는 것은 ‘결정론적’ 이야기들이다. 앞선 말을 잇자면, 그래서 나는 문장들이 마침표로 끝나더라도 그 뒤에 계속 물음표가 이어지는 것 같은 소설이 쓰고 싶었다. 아직 그걸 쓰지는 못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의문문으로 된 소설을 한 번 써 볼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죽기 전에 꼭 한 번 쓸 것이다.(웃음)

당신의 소설은 오히려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복잡해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당신의 소설을 난해하다고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그 말에는 어떤 공격성이 숨어 있는 것 같다.

‘난해하다’라는 말은 간단하게 말해서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인데, 내 소설 체계를 자신의 앎의 체계로는 파악하지 못하겠다는 뜻일 것이다.

정과리 선생은 당신의 소설이 난해하다는 지적에 대해 사람들은 단일한 것에 기대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일갈한 적이 있다.

나는 이랬으면 좋겠다. 모르겠다면 알려고 했으면 좋겠다.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소통을 이루어냈으면 좋겠다. 그러면 문학도 삶도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그런데 정과리 선생이 말했던 것처럼 공격함으로써 회피한다고 할까, 벗어난다고 할까, 자신만의 좁은 세계에 안주한다고 할까, 그런 경우가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문학에다 난해함이라는 수식을 붙여 추방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로 그런 말을 들을 때가 있다.

통념상 한 작품에 작가의 환경이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 환경이 당신 소설 속에서 어떤 강박으로 나타날 때가 있는 것 같다. 가족사라던가…

말했듯이 아버지는 지독한 학자였다. 내 기억으로 내가 어렸을 때부터 나중 돌아가시기 전까지 책상 앞에만 앉아 사셨던 분이었다. 끝없이 그렇게 앉아계셨다. 한 가지 기억나는 일화가 있는데, 신혼초에 저녁 먹고 아버지가 공부방으로 들어가기에 어머니가 뭐하나 궁금해 그 방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아버지가 버럭 화를 냈다고 하더라. 자기 공부하는 데 방해하지 마라면서. 어머니는 그 뒤로 아버지 공부방에 절대로 안 들어갔다고 하더라.(웃음)

전형적인 선비셨나 보다.

맞다. 하지만 약간 복합적인 감정이 있었던 것 같다. 예로, 우리 가계를 따져보면 남강 이승훈 선생과 일가인데 그 앙반 족보가 실제로는 산 족보였다.(웃음) 양반이 아니라 원래는 중인 계급 정도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족보를 샀다는 걸 아버지가 밝혀냈다.(웃음) 아버지는 어린 나를 앉혀놓고 우리는 원래 상놈 출신이라고 말하던 게 생각난다. 거기서 오히려 자부심을 느꼈던 묘한 분이었다. 상놈으로 태어나서 오로지 공부만 열심히 하는 학자가 되고 싶었다, 라고 어떤 글에다 쓴 걸 읽은 적이 있다. 따져보면 옛날 학자들이란 모두 양반 출신들 아닌가. 그러니 그건 굉장히 특이하고 모순된 욕망일 수도 있다. 아마도 식민지 시대의 민족주의와 기독교의 영향이 아닐까 짐작은 하는데…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나?

평범하고 조용한 가정주부였다. 물론 헌신적이셨고.

유난히 집안이 보수적이었던 건가. 아니면 그 시절에는 그런 것들이 자연스러웠는가?

지금 생각하면, 중세와 근대가 마구 뒤엉켜 있는 모습이랄지. 딱히 보수적이진 않았다. 아니, 제사 같은 건 지내지도 않았으니, 오히려 진보적인 면도 꽤 있었다. 내겐, 오로지 공부만 열심히 하라는 게 가장 큰 억압이었다. 그밖엔 내 사춘기 반항이나 일탈행위 같은 것도 비교적 너그럽게 받아들여졌었다. 아버지는 내가 중학생 때부터 담배 피는 거 알면서도 한 번도 야단친 적이 없었다. 어쩌다가 왜 담배 냄새가 이렇게 나냐, 정도였다. 아마 아버지가 할아버지한테 너무 엄격하게 생활을 통제 받아 반대로 그랬던 게 아닌가 싶다, 아버지는 일제시대 말에 일본에서 대학 유학 생활을 2년인가 했는데―그러다 학병으로 만주까지 끌려갔다가 포로로 잡힌 뒤 해방되고 나서 돌아왔다고 한다―, 그때 방학이 되어 집에 돌아오면 할아버지한테 무조건 매를 맞았다고 했다.

아니 왜, 공부 안 하고 왔다고?

그런 게 아니라 몇개월 동안 타지에서 혼자 방만하게 살다 왔으니 정신이 해이해졌을 거라면서.(모두 웃음)

그럴 수가. 너무하다.(웃음)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는 웃을 수도 없었다.(모두 웃음) 그런 경험 때문인지,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나를 때린 적이 없었다.

소설에 형체가 뚜렷하지 않은 그런 강박들이 보인다. 그게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당신으로 이어지는 그 무엇이라는 말인가?

뭔가 있을 것이다, 거기에도. 어떤 욕망들은 꿈틀거리는데 그걸 맘대로 드러내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이었으니까 말이다. 강박이라는 건 그렇게 감춰져 있다 나타나는 거니까.

감각의 한 모퉁이가 무너짐을 느낀다, 나는. 일어선 바람이 풍경을 흐린다. 급격한 침몰, 내 저항은 쉽사리 무너진다. 무슨 까닭일까, 나는 마지막으로 빠져나가며 여울지는 그 느낌의 뒤 끝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 찰나적인 풍경, 그것은 어딘가 다른 곳임에 틀림없다. 나는 무언가 다른 것을 감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 믿을 수 없는 저 너머를 드러냈던 풍경은 단순한 하나의 물리적인 대상으로 환원되어 있다.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낯선 시간 속으로』(문학과지성사, 1983), p.182

당신의 첫 소설집 『낯선 시간 속으로』는 정말이지 아름답다, 라고밖에 표현할 말이 없다. 그 책과 관련해서 반복되는 질문이기도 한데 73년과 74년에 당신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73년도가 내가 대학 들어갔을 때니까 ‘유신’이 막 시작되는 시대였다. ‘민청학련’ 사태가 생겼고 긴급조치가 줄줄이 이어지며 학교에서는 수업도 거의 못 했다. 걸핏하면 문 닫고 경찰들이 들어와서 교정을 장악하고 그랬으니까. 우리는 학교 밖으로 계속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떠돌아다녔다. 대학 1~2학년이라는 게 그렇지 않아도 많이 흔들리고 방황하고 그럴 땐데, 툭하면 한 달 씩 학교가 문을 닫곤 했으니까 정말 한없이 밖에서 헤매던 시절이었다. 여행도 많이 다녔고. 그러면서 정말 진지하게 처음 나를 들여다보았던 거 같다. 동시에 시대나 세상에 대해서도.

어쨌든 이런 소설이 20대에 쓰여진 게 놀랍다.

잡지에 처음 발표된 건 1980년도였다. 그해 『문학과지성』 봄호에 실렸는데, 나오자마자 『문학과지성』이 강제 폐간됐다. 나도 데뷔하자마자 끝나나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웃음) 음, 이 소설을 처음 쓰기 시작한 건 아마 77년 부터였을 거다.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극도로 암울하고 심각했던 시기다.

“상처를 통해 마침내 우리는 다른 삶을 살기 시작하는 것이다”라고 썼다. 상처로부터 기인한 개인적 성찰이나 기억으로부터 소설이 시작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필경 그럴 거다. 상처는 내가 내 밖과 접촉하는 데서 생긴다. 아까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그때는 누구나 다 내면 깊숙이 상처를 안고 살았다. 사회적 상황 자체가 온통 그랬다. 모두가 고통스러워서 얼마만큼 아파야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지도 모를 때였다. 이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까?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여기가 일종의 기로였다. 당시엔 참여문학이니 민족문학이니 하는 이념지향적 문학론이 대세라면 대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픔을 실감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이다. 나는 사회적 아픔의 실체를 보기 위해선 먼저 구체적인 ‘개인’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누구보다 나 자신부터 말이다.

근래 젊은 작가들도 사회적으로 공감하는 상처나 고통에 대해 많이 쓴다.

당연한 일이다. 개인적 실존과 사회적 상황은 맞물려 있으니까. 그러나 아까 했던 이야기를 잇자면, 상처를 더 깊이 파고들었으면 좋겠다. 아프더라도 자기 상처를 더 열고 들여다봐야 하는데 ‘쿨’ 한 척 너무 쉽게 덮어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적당한 핑계거리를 찾으면서. 그런 면에 있어서는 요즘의 젊은 작가들은 좀 심약해 보이기도 한다. 우스갯소리로 표현하자면, 소설이 너무 징징거린다.

신판 책 표지에 당신의 젊은 날의 사진이 인상적이다.

86년인가 87년에 찍은 거니, 30년 전 한창때 사진이다. 더구나 전문가 솜씨였으니까…

커버를 벗기면 안에는 원래 오리지널 표지가 있다. 예쁘다,

그건 황지우 시인이 내가 보는 앞에서 쓱쓱 그려준 거다.

노승영(이하 노) 이 책은 소설명작선 새 시리즈에 들어가 있다. 그러니까 개정판인 셈이다.

초판을 14쇄까지 찍고 개정판 10쇄를 더 찍어 24쇄를 넘게 찍은 베스트셀러다. 이 이야기는 일반 독자가 이인성을 읽는다는 것은 좀 무리가 있더라도, 문학을 하려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인성을 통과해서 가야 한다는 의미처럼 보인다.

과한 이야기다. 앞에 계신 최인훈, 이청준 선생 같은 분들을 생각하면 별거 아니다.

나도 대학 때 읽었다. 20대에 이인성을 통과하던 기억이 난다.(웃음)

나는 소설 흉내도 엄청 냈었다.

상상이 안 간다. 한 때의 아방가르드.

왜 좋았나 생각을 해보면 세련됐다, 그 느낌이 강했던 거 같다.

아이구…

상품으로 소비되는 책이 있고 텍스트로 남는 책이 있는 거 같다.

그것도 글쎄, 내 책이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왜 쑥스러워하시나. 베스트셀러라는 말이 영 쑥스러우면, 그럼 스테디셀러 작가인 걸로. 결론은 그렇게.

당신이 젊은 시절, 어떤 작가를 통해서 소설의 세계로 온 것인지 궁금하다.

중고등학생 때 세계문학전집에서 이것저것 읽으며 제임스 조이스나 허만 멜빌 같은 작가들에 매력을 느꼈지만, 아무래도 불문학을 먼저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거 같다. 체질적으로 그랬는지, 왠지 관심이 쏠려 그쪽 작가들을 많이 읽었다. 전성기를 누리던 사르트르와 카뮈, 그 다음엔 누보로망 작가들. 점점 거슬러 올라가, 내가 진짜 예술가라 느꼈던 플로베르까지. 보들레르, 랭보 같은 시인도 아주 좋아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가슴에 확 꽂혔던 게 베케트의 극작품들이었다. 그 덕분에 나는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이오네스코, 장 주네 등도 읽게 됐다. 아마 내가 읽고 좋아한 모든 작품들이 내게 영향을 끼쳤을 게다. 그런데, 이쯤에서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읽는 것과 쓰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는 거. 그런 책들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했던 게 뭐냐면, 그러면 작가 지망생으로서의 나는 그들과 어떻게 다르게 쓸까, 하는 것이었다. 문학관은 공유할 수 있다 해도, 나는 내 상황에 맞는 나만의 구체적 문제의식과 글쓰기 방식을 찾고 싶었다. 더구나 나는 한국 사람이고 한국어를 사용한다. 한국어를 통해 어떤 문제를 어떻게 그려낼 수 있는가, 어떤 꼴의 소설로 형상화시켜야 하는가, 그런 것들이 읽는 내내 숙제였다. 말하자면 나는 독서를 하며 한편으론 계속 글쓰기 실험을 했던 셈이다. 이렇게 써보고 저렇게 써보고 하면서.

전형적이라는 표현을 써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리얼리즘 소설의 경우와는 분명 다른 거 같다.

아주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전형적 리얼리즘 소설은 이미 결정된 세계관을 가지고 이미 결정된 이야기의 전말을 이미 결정된 서술 방식으로 그려낸다. 반대로 나는 미결정된 세계관을 더듬거리며 미결정된 이야기의 갈피들을 미결정된 서술 방식으로 밀고나가려 했달지.

직접 연극도 했나?

대학생 때 희곡을 두 편 썼었고, 아마추어 배우로 무대에 올라간 적도 있다. 서울대학에 대학문학상이란 게 있는데, 2학년 때 후배가 희곡으로 당선됐었다. 그 친구가 자기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싶다며 등장인물 역할에 당신이 제일 어울리니 해보자고 그래서.

주인공인가?

그랬다. 히피 예수. 그때는 그냥, 그것도 함께 노는 방식이었다. 조그마한 아마추어 공연 모임들이 꽤 있었다. 나중엔 <연우무대>에서 연출하던 김석만, 이상우 선배와도 친분을 좀 맺었다. 그렇다고 내가 연극과 관련해 실제로 뭐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니고, 내가 희곡 전공한다고 하니까 와서 좀 조언도 하고 그러라는 정도였다. 틈틈이 놀러 다녔던 셈이다. 대학 선생이 돼서는 학생들에게 희곡 이론과 텍스트 분석을 가르치는 게 직업이 되었고.

노승영 씨도 연극반 아니었나?

아니다, 나는 노래패였다. 총연극회와 쌍벽을 이루는.

그때는 노래패와 연극패가 여러 가지로 앞장섰던 팀들이었다.

쌍벽을 이뤘다는 표현은 노래패가 좀 못했다는 표현으로 들린다.

너무 예리하시다.(웃음)

평소 음악 얘기를 할 때면 문학 얘기할 때보다 행복하고 즐거워 보인다. 이런 것이 근원적이고 기원적인 것들에 대한 탐닉이라고 봐도 되는 건가?

내가 음악에 빠졌던 건, 꽉 막힌 내 사춘기에 그게 거의 유일한 출구였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다가 점점 더 관심이 확장되었는데,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20세기 초의 블루스나 포크 음악까지 이르렀다. 지극히 아마추어 수준이지만, 그 전체적 지형도와 역사적 계보를 그려보고 싶은 욕심까지 들었다. 음악 뿐 아니라, 내 속에 뭔가 그런 게 있다. 뭔가에 답답할 때엔 주로 역사를 다시 찾아본다. 문학이면 문학사를 다시 본다. 대체 문학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흘러왔던 건가를 보면, 눈앞의 혼란도 조금 정리되고 마음도 다잡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보기엔 현재의 문학판도 바뀔 때가 멀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그냥 상투적인 질문이다. 역사가 반복된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당신 아버지의 생각대로 진화되어 가는가?

뭔가 조금씩 달라져가는 측면이 분명히 있는데, 그게 발전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단순 반복도 아닌 것 같다. 이건 베케트 희곡에 관한 논문을 쓸 때 떠오른 건데, 그게 반복이라도 평면적인 원형의 반복은 아닌 듯하다. 가령 나사를 생각해보자. 위에서 내려다보면 빙글빙글 원처럼 돌아가는데, 옆에서 보면 깊이가 있잖은가. 나사는 돌면서 아래로 파고들어간다. 어딘가 더 깊은 곳을 향해서. 그 깊은 곳이 어딘지는, 역시 잘 모르겠다. 이상향일까? 종말일까? 지독한 허무주의자였던 베케트는 그것을 종말이라고 본 게 분명하다. 나는 그런 허무주의자는 아닌데, 요즘엔 자꾸 비관적인 느낌이 든다. 인류도 급기야 멸종하고 말리라는. 농담이지만, 그럴 바에야 가급적 빨리 멸종했으면 싶다.(웃음)

지나가는 질문 하나 해도 되나? 가장 최근에 산 책은 뭔가? 받은 책 말고, 최근에 구입한.

며칠 안 되는데 『금오신화』와 『표절에 관해서』라는 책을 샀다. 아직 읽지는 못하고 책상에 올려놓고 있다. 『금오신화』를 산 건 프랑스에서 내 작품을 불어로 번역해준 분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굉장히 친해져서 이메일도 자주 주고받고 그러는데, 그 분이 최근에 금오신화를 번역하면서 내게 뭘 자꾸 물어본다. 그런데 내가 『금오신화』를 고릿적에 읽고 책도 없어져서 대답이 영 궁한 거다. 대답을 좀 잘 해줘야겠다 싶어서 그 책을 샀다. 『표절에 관해서』는 서평을 읽고 구입했다. 얼마 전 표절 논쟁을 보면서, 표절에 관한 문제와 모방에 대한 문제가 대책 없이 뒤섞여 있다고 느꼈다. 나는 그걸 구분해서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표절은 말 그대로 남의 문장을 가져다 베끼고 훔치는 거지만, 모방은 그보다 훨씬 광범위한 문제고 접근하는 관점도 다양할 수 있다. 그런 걸 혹시 정리해볼 수 있을까 해서 그 책을 샀다. 프랑스에서는 어떻게 접근하는지 보려고.

맞다, 그 두 경계가 아직 확실하지 않다.

내 머릿속에서는, 모방 역시 거의 본능적인 것이다. 뿌리 깊은 무의식적 측면을 포함하며, 어쩌면 성장의 한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떤 자의식을 통해 창조적으로 승화될 수도 있다. 반면에 표절은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것에 가깝다. 더 따져봐야겠지만, 연속적인 수많은 문장을 무의식적으로 표절하는 것도 과연 가능할까? 어느 정도나 가능할까?

가끔은 그게 너무 두렵다. 내가 혹시 무의식 중에 남의 것을 베껴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

최근엔, 작가들이 엉뚱하게 겁을 많이 내더라. 그걸 경계하느라 주석 달린 소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작품 속에서 암시적으로 녹여서 처리할 수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에 대한 지나친 과잉 의식도 바람직하진 않다.

소설의 구성과 소재도 표절이 가능하잖은가.

아니, 소재는 얼마든지 갖다 쓸 수 있는 거 아닌가? 역사 소설을 보면 알 수 있는 건데 단종이나 사도 같은 경우 그 소재 자체를 선점했다고 저작권을 주장할 수는 없다. 그 소재를 가지고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질적 수준이 달라질 뿐이다. 그리고 구성의 문제는 표절보다 모방의 차원에서 논해져야 하지 않나? 구성이란 인류가 가지고 있는 한정된 이야기 방식의 조합과 변형으로 이루어지니까 말이다.

이제는 공공연히 이야기는 몇 가지 종류 밖에 없다고 한다. 모험 이야기, 자수성가 이야기, 아버지 이야기 같은.

내 대학 시절에 구조주의와 기호학이 한창 유행을 탔는데, 그 무렵에 이야기의 유형이나 구성 요소와 방식들을 도식화하는 연구가 꽤 많이 소개됐던 기억이 난다. 물론 도식화는 가능하다. 상상력의 원형을 물, 불, 공기, 대지라는 4대 요소로 도식화하는 것처럼. 그러나 중요한 건 도식화 자체가 아니다. 그렇게 도식화된 것들을 어떻게 역동적으로 변형시키고 조합하느냐, 그래서 어떻게 변화하는 삶에 대응하는 새로운 실존적 형태를 만들어내느냐는 것 이 문제의 핵심 아닐까?

연관해서 질문을 하고 싶다.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버리지 않는』은 매 단락마다 시 구절 하나로부터 소설적 진술이 시작된다. 소설이라고 하면 방금 말한 대로 그저 그런 도처에 있는 이야기가 주체가 돼서 나서는데, 당신의 이 소설은 그걸 쉽게 넘어서면서 언어적인 것이 주체로 떠오르는 것 같다.

당시 문학판에서 유행했던 말 중 하나가 ‘혼성모방’이었다. 여러 케이스가 있었는데 나는 화가 좀 나 있었던 같다. 마구 베껴 쓰고 나서 들키니까 혼성모방이니 뭐니 하는 변명을 늘어놓는 게 저질스럽고 졸렬해 보였다. 그게 이 소설을 쓴 첫 번째 이유는 물론 아니지만,  그 기회에 타자의 언어와 내 언어가 서로 어떻게 만나 어떻게 섞이고 어떻게 밀어내는지를 소설적으로 그려보고 싶다는 욕망은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며칠을 술에 절고 난 어느 날 아침, 그는 부스스 일어나 벽에 걸린 「세한도」 복사화를 멍하니 바라보며 독백체로 중얼거렸다. “차라리 목수라면 마음이 평화롭겠는데……. 소설을 재목처럼 다룰 수만 있다면, 난 그걸로 못을 쓰지 않는 가구를 짜듯 책을 엮겠어. 어긋난 부분은 언제나 빼서 다듬고, 제목이 나쁜 부분은 나중에라도 갈아 끼울 수 있도록. 내가 못한다면 다른 누군가라도 해줄 수 있게 말이야.” 마치 그 동안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는 듯한 그의 태도가 너무도 기이했다.
―『한없이 낮은 숨결』(문학과지성사, 1989) p.311

『한없이 낮은 숨결』을 읽으며 작가도 예술가로서의 어떤 측면, 필연성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나는 작가를 작가이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힘이 자기 세계를 만들겠다는 욕망이라고 본다. 자기만의 허구 세계를 자기만이 방식으로 구축해보겠다는 예술가적 자의식 말이다. 요즘은 자주 거부반응을 일으키지만 우리가 예술의 ‘진정성’이라 부르는 것도 그런 자의식과 관련되지 않겠나.

당신 작품을 보면 당신의 예술가적 자의식은 좀 특이한 것 같다. 소설이 흔히 하나의 단면으로 전체를 보여주는 작업이라고 한다면 당신의 소설은 그걸 더 쪼개서 생각이나 의식의 세밀한 부분으로 전체를 내어주는 방식이다. 그러다 보니 소설은 굉장히 정적인데 그 안은 동적인 에너지로 넘쳐난다.

그런가? 뭐라 대꾸해야 할지 좀 어렵다. 한 가지, 나는 하나의 단면으로 전체를 보여주는 건 불가능하다고 늘 생각했었다. 이를테면, 실제의 인간은 하나의 단일한 성격을 가진 전형적 존재가 아니다. 그건 허상이다. 인간은 다면체, 다층적 존재다. 내 안에는 수많은 다른 ‘나’가 살아 움직이며 시간을 타고 흘러간다. 때로 여러 내가 동시에 뒤섞이며 역동적인 변화를 몰고 오기도 하면서. 그러면서 전체로서의 ‘나’를 형성해나간다. 삶의 끝까지, 끝없이 현재진행형으로. 그걸 그려내려 했던 게 동적 에너지로 느껴졌을까, 혹시?

그런 자의식을 불러올 때도 있지만 의식 밖에 있는 어떤 무의식에 대한 존재 유무도 끌어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가령 생략은 해체로도 읽힌다. 말줄임표가 물음표로 읽힌 것처럼 말이다.

거기에 대해선 내가 할 말이 별로 없다. 그건 당신이 나를 느끼고 이해하려는 노력의 결과니까. 다만 해체가 그저 해체만인 법은 없다. 글을 쓰는 한, 해체엔 항상 재구성이 반작용으로 따라온다. 거의 동시에.

앞서 난해하다는 표현에 대해 얘기했지만, 『한없이 낮은 숨결』 이후에는 책들에 ‘전위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기 시작한 것 같다.

『낯선 시간 속으로』부터 이미 그런 소릴 들었었다. 이에 관해선 아까 배수아 씨가 했던 말과 비슷한 견해다. 로브그리예도 예전에 말한 적이 있다. 누군가에게 ‘전위’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것은 그를 문학의 장 밖으로 밀어내려고 의도의 소산이라고. 50~60년대에 누보로망이 등장했을 때 프랑스의 보수적 비평가들이 그랬었다. 우리 경우엔 80년대에 민중문학, 민족문학 진영에서 나 같은 사람을 그리 취급했었고. 아무튼 이젠 과거사 아닌가? 그런 구별이 그리 심하지도, 딱히 대단한 시빗거리가 되는 것도 아니지 않나?

근래 일군의 젊은 작가 그룹이 등장하면서 이 문제가 조금 다른 의미에서 재논의되기도 했었다. 나름대로 정말 ‘핫’ 했는데 어느새 힘이 많이 빠진 모양새다.

그들은 어쨌든 기본적으로 전통적인 소설작법을 고수하지는 않는 집단이다. 상상력도 작법도 예전보다 훨씬 자유분방해진 것 같다.

스스로를 전략적으로 구분 짓게 하는 의도도 있는 것 같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70년대의 동인 활동, 80년대의 소집단운동이 그랬던 것처럼 일종의 데먼스트레이션이 필요할 때 집단적 응집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더 효과적일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각 작가가 얼마나 의미 있는 작품을 생산해 내느냐가 성패를 가르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건 각자가 얼마나 자기 길을 끝까지 몰아붙이는가, 밀고 나가느냐에 달렸다. 그들이 어떻게 되는지 차분히 두고 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한유주가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친구의 경우는 일관되게 자기 세계를 몰고 가는 게 분명하게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작가로서의 한유주를 신뢰한다. 그 동안 쌓인 작품들이 스스로 거짓 글쓰기가 아니라는 걸 중명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젊은 작가들이 몇몇 보이는 건 다행스럽다.

나는 그 친구가 낭독한 걸 듣고 굉장히 감동 받은 적이 있다. 눈으로 읽을 때 잘 느끼지 못했던 것이 아, 한유주는 저런 걸 하는 구나. 깨달은 적이 있다. 소설을 소리로 듣고 알게 된다는 것이 조금 신기한 경험이었다.

맞다, 보이지 않는 소리가 문학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언어는 소리 체계이기도 하니까. 개인적 이야긴데, 나는 글을 쓸 때 쓰고 있는 문장을 계속 중얼거린다. 그러면서 리듬, 높낮이, 음향 효과 등이 마음에 안 들면 계속 고친다. 그게 종이라는 평면 위의 글자를 허공으로 떠올려 독자에게 흘러가게 만드는 힘이라고 여겨져서 그런다.

한편으론 젊은 작가의 경우 이런 형식적 시도가 진정성에서 나온 것인가, 스타일 내지는 어떤 포지션을 갖기 위해 의도적으로 하는 것인가, 그런 것들이 구분이 안 되는 경우도 많다.
이 새로 등장하는 작가들이 그저 시류에 민감한 이야기 기술자들에 불과한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때가 꽤 많아졌다. 재미있는 이야기 만드는 기술만 배워서 SNS 등에 떠도는 흥미로운 소재거리를 가져다 적당히 포장해 상품으로 팔아먹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말이다.

미국식 글쓰기가 좋은 예일 거 같다. 우리 소설이 미국에서 잘 쓴 소설이나 헐리웃 영화의 플롯 같은 경우를 닮아 간다. 하지만 굉장히 재밌고 결코 멈출 수 없어서 계속 읽게 만드는 장점도 있다.
백 결국에는 그걸 다양성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다양성이라고 보기에는 소설들이 서로 너무 닮아 있다.

정곡을 찌른다.

읽다보면 구별이 잘 안 된다. 그게 이 작가 건가, 이게 저 작가 건가, 자주 그런다.

상업적 흐름이라든지 소비의 흐름과도 연관된 건가?

당연히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지금은 압도적인 대중문화의 시대인데, 그 생산과 유통 구조는 우리가 예술이라고 불렀던 것들마저 단순한 소비 상품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렇다면 진정한 다양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작가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인가?

막막한 질문이다. 다소 엉뚱한 대답인지 모르겠지만, 우선 작가 지망생이나 작가나 문학 작품들을 많이 읽어야 할 것 같다. 내가 보기엔, 요즘은 문학 하는 사람들이 문학을 거의 안 읽는 것처럼 보인다. 문학판 안에서 서로서로의 글도 잘 읽지 않는 것 같다. 우리에겐 긴 역사 속에 축적되어 온 거대한 문학 저장고가 있는데 그것들에 대해서도 거의 관심이 없다. 문학의 다양성을 회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다양한 문학 텍스트를 접하는 것이다. 그 사이에서 자기 길을 찾아야 한다.

백다흠(이하 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요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비평가들에 의해 잘 호출되지 않은 느낌이 든다. 신인 작가들의 작품이 문학비평으로 호출되지 않으니 작가들이 스스로 작품에 작은 전략이랄 수 있는 것들, 이를테면 시류적인 것들, 동인 활동 같은 것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작품을 제작하고 배치한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들이 모여 작품을 어떤 한 방향으로 ‘포지션’화 하는 전략이 있는 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평론가들이 작품을 열심히 안 읽는 것도 아주 심각한 문제다. 문학 비평은 작품 읽기에서 시작된다. 거기서부터 시작해 공시적인 문학이론을 만들고 통시적인 문학사도 구성하고 하는 게 평론가들의 가장 중요한 몫인데, 그런 비평적 열정과 활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요즘은 소설가가 평론가보다 작품을 조금은 더 읽는 것 같다. 장사가 너무 안 되는 같은 영업직이니까.(웃음) 많이 팔리는 집은 뭘 파나, 그런 데 조금 더 신경 쓰는 것 같다.(웃음)

나는 김현 선생 제자라는 걸 늘 고맙고 자랑스럽게 생각해온 사람이다. 내가 본 김현 선생은 매일 책을 읽는 사람이었다. 모든 잡지를 다 읽었고, 요즘보다는 책이 덜 나왔다고 해도 나오는 책 거의 전부를 읽고, 매일 짤막하게 메모하고, 그리고 뭔가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곧바로 글을 썼다. 시대가 다르긴 하지만 그 양반은 청탁 받은 글만 쓰지는 않았다. 쓰고 싶은 글을 써 놓은 뒤에 이거 어디 실어 달라고 부탁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었어도 열정이나 사명감 같은 것이 여전히 필요한 게 아닌가.

[……] 도대체 어디서 밀려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물론, 아무 짐작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섬세하게 구분지어 말하자면, 그 낙엽들이 어떤 정신의 방향으로부터 오는 것인지는 막연하게나마 추측이 가능한 듯싶었다. 특히 지형적으로, 그것들은 아침마다 해를 띄워 보내는 동쪽으로부터 오고 있음이 확실했다. 한나절을 둥글게 돌고 나서 반대편 끝의 서해바다 아래로 잠기는 햇덩어리가 긴 손길을 천천히 거두며 풀어놓는 안개 뒤, 이번엔 밤의 검은 동굴이 열리기 시작하는 저 동쪽 끝 어딘가로부터, 낙엽들은 우수수우수수 끊임없이 날려와 강물 위로 내려앉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신비롭다면 신비롭기 이를 데 없는 그곳이 정녕 어떤 곳일까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언젠가는 어쩔 수 없이 그곳에 다다르게 될지 모른다는 느낌을 받긴 해도, 이상했다, 그런 느낌이 오는 순간 발길은 돌아섰다. ―『강 어귀에 섬 하나』(문학과지성사, 1999) p.108

실험들을 형식의 문제로만 이해하는 것은 안이한 비평적 관습의 답습일 뿐이다. 작가의 언어 실험이란 자기 실존의 문학적 투기로서만 미학적 전율이 될 수 있다. 어법과 문체는 단지 형식의 문제가 아닌, 삶의 형식에 관한 문제이다. 이인성 소설 언어의 치열성은 소설 형식에 대한 파괴의 당위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소설적 욕망의 긴장 관계를 실존의 언어로서 대면하고 살아내려는 문학적 투지의 소산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문체 실험은 어떤 특정한 문학 이념으로부터가 아니라 작가 의식의 내적 필연성의 요구에 응답하는 것이다.
― 이광호, 「치명적인 사랑의 실험」(『강 어귀에 섬 하나』 해설)

분명한 것은 요즘 소설의 주체는 스토리라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소설에서 언어의 예술적 역량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소설을 비롯한 문학 장르가 사라질 것만 같은 불안감이 들기도 한다. 이건 작가만 느끼는 게 아니라 독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독자나 작가 스스로가 스토리만으로는 모자란다는, 문학의 보다 본질적인 무엇인가에 대한 결핍을 느끼는 순간이 오면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될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 독자들은 온통 재미있는 스토리에만 빠져 있는 중이다. 만화나 드라마에서부터 영화, 뮤지컬 등, 문학보다 훨씬 현란하게 제공되는 갖가지 재미있는 스토리에 탐닉하고 있는데 그걸로 충족되지 않는 어떤 언어의 자리가 요청된다면, 언어만이 줄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해진다면, 문학은 되살아날 것이다. 그런 결핍을 독자가, 그리고 작가가 스스로 느끼는 순간이 나는 올 거라고 믿는다.

문학의 판이 머지않아 바뀔 거라고 했는데 그 이야기인가?

지금처럼 일변도로 문학이 소외되거나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건 오로지 체감으로 말하는 것이다. 내 몸이 스스로 그렇게 말하고 있다. 이걸로 이렇게 안 끝난다고. 내 몸이 이미 어떤 결핍을 느끼고 있으니까. 혹시 망상일까?(웃음)

그래서 그런가, 당신의 소설은 여전히 젊다는 생각이다.

갑자기 왜 그런 말을?

영업 비밀을 알려 달라.(웃음) 근래에는 작품의 생명력, 그런 주기가 더 짧아지는 것 같다.

작가들이 너무 빨리 쓰고 너무 많이 쓰고 있다. 소설 작품이 소비 상품이랑 비슷해져 버려서 금방 신선도를 잃고, 그 다음 상품을 그럴듯하게 못 내어놓으면 작가 자신이 용도 폐기되고 다른 작가로 곧바로 대체된다. 언제부턴가 작가 자신들도 소설 쓰기를 이야기 상품 제작 기술로 간주하는 분위기다. 어떻게 흥미를 끌 수 있을까, 그것만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지금은 인정받지 못하면 아예 존재조차 할 수 없다는 강박관념이 젊은 세대에 굉장히 강한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인정받기 위해서는 검증된 길, 인정받을 수 있는 길로 가는 게 아니겠는가.

그렇게 인정받은들 곧 사라져버리면 뭐 하나? 결국은 어떤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로 인정받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역으로는, 작더라도 좋은 독서공동체, 비평공동체들이 생겨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상업주의적 회로를 벗어나, 문학의 유통방식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최근 등장한 독립출판이나 독립서점 같은 것들을 더 활성화시켜 변화의 물리적 근거도 만들어가야 한다. 내가 문학실험실이란 걸 만들어서 뭔가 좀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가능성 있는 작가들을 어떻게 찾아내고 부추겨 줄 수 있을까, 어떻게 의미를 부여해주고 소개해 수 있을까 하는 의도에서 출발한 거다.

그런 역할을 예전엔 문학과지성사에서 잘 했다고 생각한다.

주요 문학출판사들이 어느덧 거의 비슷비슷해졌다. 이념적 지향성이 강했던 창비도 지금은 변별성을 찾기 어렵다. 그나마 문지는 좀 덜한 편이지만, 주류 출판계 전체가 상업주의적 경쟁에 휩싸여 있는 상황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러니 이제 다른 대안공간들이 절실하다는 거다. 대안이라고 할까, 대항이라고 할까. 그런데 이건 작가들의 자발적 결집을 요구한다. 작가들도 자신을 걸고 내기를 해야 할 시점인 셈이다.

이미 자리 잡은 작가들마저 굉장히 정체되어 있는 분위기다.

그들도 똑같은 회로 속에 갇혀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들 중 상당수는 조만간 상업적 ‘스타 시스템’ 밖으로 밀려날 것이다. 그러면 그들에게도 일종의 ‘인디 씬’이 필요해질 거다. 밥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부터 여러 상황이 쉽지는 않겠으나, 나는 그들이 좀 독한 마음을 품었으면 좋겠다. 그래, 나 망해도 좋으니까 한 번 쓰고 싶은 대로 써보다가 죽겠다, 뭐 그런 독기랄까.

독기라는 건 자기가 믿는 문학에 대한 확신 같은 건가?

뭐, 그렇겠다. 자신만이 쓸 수 있는 것을 쓰겠다는 것.

언제부턴가 문창과에 대한 부정적인 말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궁극적으로 글쓰기가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는 종류라고 생각하는가?

나 개인적으론, 글 쓰는 걸 수업 방식으로 가르친다는 게 그리 바람직 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어떤 이유에서든 교육은 도식화 상투화되기 쉽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고 어떻게 문장은 다듬고 하는 게 모두 획일화될 위험이 높지 않을까? 글 쓰는 데 가장 좋은 지침은 모두 알다시피 독서다. 저 앞에서 이미 한 말과 같지만, 그걸 통해 자기 스스로 길을 찾는 게 중요하다.

등단제도 또한 문제가 크다.

등단제도도 굉장히 규범화 획일화되었다. 비슷비슷한 심사 제도도 그렇고, 늘 같은 심사위원들이 도처에 등장하는 것도 그렇고, 출판사의 경우는 그걸 통해 팔아먹기 좋은 작가나 찾으려 하고 것도 그렇고. 그러다보니 예비 작가들은 이런저런 암묵적 지침에 맞춰 쓰려 하고. 모든 게 그런 식으로 맞물려 움직이니까, 고루한 말이지만 독창적인 작가들이 나오기 쉽지 않게 되었다.

어느새 어두워졌다. 둘러보니 이곳 분위기가 낯선 게, 책이 잔뜩 쌓여 있고 지저분할 거 같았는데 그렇지 않다. 교수 연구실 가면 책이 막 쌓여 있고. 들어갈 틈도 없이 그런 방을 상상했다.

이렇게 단정한 작가의 서재는 또 처음인 것 같다.

책장에 잡지는 순번대로 되어 있고, 시집과 소설도 분류가 잘 되어 있다.

내 책은 저 밑에 있다.(웃음)

분류하고 정리하는 게 내 취미 중 하나다.(웃음)

그건 할아버지 계몽주의의 피가 영향을 끼친 건가?(웃음)

정리하는 건 아버지한테 배운 습관 중 하나일 거다. 저기 소설책들은 거의 나이순으로 대강 맞춰서 하다가 최근 책들은 그냥 아무데나 꽂아놓기도 하고 그렇다.

문득 생각났는데, 언젠가 내게 CD를 준 적이 있다.

아, CD! 오늘도 줄까? 요즘 젊은 친구들은 CD를 많이 듣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CD를 선물로 준다. 그냥 물건으로라도 가지고 있어라, 하고 말이다. 음악을 담은 물질감이랄까, 그런 게 좋아서. 부클릿 사진이나 텍스트 정보도 보관해 두면 쓸모가 있고. 아직까지 남아 있는 가장 큰 취미가 판 모으고 음악 듣는 거다.

취미라기엔 너무 전문적으로 보인다.

그 정도는 아니고, 뭘 시작하면 자꾸 더 안으로 들어가 보긴 한다. 처음 목표는 특히 60~70년대의 중요한 록과 포크, 그리고 블루스 음악 판을 모아보자는 거였다. 물론 원하는 만큼 다 모으지는 못했다. 없는 것도 많고. 그런데 음악을 듣다 보니 그 앞이 궁금해져 50년대로 올라갔는데, 특히 흑인 블루스 음악은 더 거슬러 올라가 봐야할 만큼 뿌리가 깊고 흥미로웠다. 나중엔 20~30년대까지 뒤졌다. 뒤지다보니 미국 포크와 블루스가 한 뿌리라는 것도 알았고. 그 과정에서 확인했는데 잘 팔리지도 않을 그 옛날의 희귀 자료들도 상당수 CD로 복원되어 있었다. 가령 한 도서관 사서가 50년대에 전국을 돌며 채록한 음악 같은 거, 놀라웠다. 소도시 주막에서 부르던 흑인 무명 가수나 감옥에 갇혀 있던 죄수가 부른 노래까지, 그런 걸 자료로 보관한 문화적 저력 같은 것도 느꼈고. 아무튼 들으면 좋고, 듣다보면 또 궁금증이 가지를 치고, 그런다.

솔직히 말해서 책을 선물 받는 것보다 CD를 선물 받는 게 더 좋다.

집에는 뭐가 더 많은가? 책과 CD 중.

많기는 아무래도 책이 더 많을 것이다. CD는 한 3,000장 정도고.

집이 굉장히 커야 되겠다.

아니, 좁은 데다 빼곡히 쑤셔 넣는 거다.

하루 일과를 말해 달라.

통상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 오전 느지막이 여기 나왔다가 돌아가, 밤엔 집에서 내 일 하고. 약속 생기면 사람 만나고.

퇴직하고 생긴 패턴인가?

그 전에도 늦게 자긴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그땐 아직 젊어 감당이 돼서 술을 엄청 먹거나 말거나 아침이면 출근하고 그랬는데, 학교 그만두니까 아무래도 느슨해지고 게을러지더라. 이젠 나이도 좀 더 먹었고.

여긴 거의 매일 나오는 건가?

거의 매일 나온다. 퇴직 후 한참동안은 낮 시간을 거의 혼자 보내다가, 문학실험실 하면서부터는 저 친구(최하연 시인)가 있으니까 함께 점심 먹으러 나와, 내가 할 일이 많지는 않지만 『쓺』편집이나 단행본 출간 일 따위 사무적인 업무들 좀 처리하고, 새로 나온 책들도 들여다보고, 낮잠도 잠깐 자고, 그런 식이다. 집에 들어가선 가급적 내 일에만 매달려보려 하는데 집중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마무리 못 하고 있는 글들 써보려고 혼자 낑낑대다가 대개 밤 열두시 넘으면 맥주를 마시기 시작한다. 오래된 안 좋은 버릇이긴 한데, 머리가 꽉 막힌 것 같으면 자동적으로 술을 마시게 된다. 술 마시다 보면 또 반짝 하는 게 있잖은가. 문득 생각나는 게 있으면 메모도 하고 이것저것 다시 뒤져보기도 하고 음악도 듣고 그러다가, 서서히 취하면 자동적으로 쓰러져 잔다. 대략 두 시 반에서 세 시쯤.

가족하고는 사이클이 전혀 안 맞는 거 아닌가?

살다보면 적응하고 닮는 것도 있다.

산책하기 좋아하는 길도 있는가?

이 근처(혜화동과 성북동)는 옛날 동네가 되어서 나름 골목 돌아다니는 재미가 있다. 게다가 가까이 성곽 길도 있고 창경궁도 있고, 낙산 쪽도 그럴 듯하다. 정 갑갑할 땐 훌쩍 여행을 떠나지만, 평상시엔 근처에서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는 게 그나마 숨통을 터준다.

굉장히 익숙한 걸 좋아하고 아끼는 것 같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내가 아끼는 것들은 최대한 지키려 하는 편이다. 가령 매주 금요일이면 거의 어김없이 문지에 나가 술판을 벌였다. 누구나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단골 술집을 마련해 놓고 말이다. 무크지 『우리 세대의 문학』을 만들기 시작했던 82년경부터 쭉, 30년 넘게. 문학실험실을 시작하면서는 매달 홀수 금요일은 여기서, 짝수 금요일은 문지에 나가서 술을 마신다. 이 역시 일관되게.

문학실험실 사정은 어떠한가?

당연히 어렵다. 그냥,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하는 중이다.

마지막으로, 쓰고 있는 소설 이야기 좀 해달라.

이미 발표한 중편 4개를 책으로 묶는 작업 중이다. 원고지로 한 900매 정도 썼는데, 그 4개의 중편을 ‘연작 장편’의 형태로 엮기 위해 전체적으로 다시 고치고, 그 사이사이를 연결하는 고리들을 새로 쓰고 있다.

소설은 거의 다 완성이 된 거 아닌가?

큰 틀은 거의 완성된 셈이다.

언제쯤 출간 예정인가?

모른다. 내년이면 나올 것 같다는 말을 한 지가 3년은 된 것 같다.

최하연 시인 확실히 이게 공식적인 자리긴 공식적인 자리가 맞나 보다. 평소와 다르게 말도 많이 하시고.

(웃음) 저 사람이 이제 나를 너무 잘 알게 됐다. 한 3년 붙어 있더니.

밖에 눈이 펑펑 내리고 있다. 우리는 집에 어떻게 가나?

우선 술 한 잔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