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출판

신간 소개

김혜순 신작 시집 <죽음의 자서전> 출간
2016년 5월 24일 발행 / 160쪽 / 양장 /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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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독보적인 아이콘, 김혜순 시인의 미발표 신작 시, 문학실험실에서 시집으로 묶어

2015년, 김혜순 시인은 지하철역에서 갑자기 몸이 무너지며 쓰러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삼차신경통’이라는, 뇌 신경계의 문제로 그녀는 매 순간 온몸이 전기에 감전되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 병원을 찾았으나, 메르스 사태로 병원을 옮겨 다니는 이중의 고통 속에 놓이게 된다. 세월호의 참상, 그리고 계속되는 사회적 죽음들 속에서, 그녀의 고통은 육체에서 벗어나, 어떤 시적인 상태로 급격하게 전이되면서, 말 그대로, 미친 듯이 49편의 죽음의 시들을 써내려갔다. 바로 그 결과물이 여기, 이 멀쩡한 문명 세상에 균열을 불러오며, 문학적으로는 고통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지독한 시편으로 묶였다. 49편 중 대부분이 한 번도 세상에 나온 적 없는 미발표 신작 시로, 이 시집은 그 자체로 ‘살아서 죽은 자’의 49제의 기록이라 할 것이다.

내 안의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 죽음을 이토록 처절하게 다룬 우리 문학은 없었다.

끔찍한 살처분의 현장을 문명 내부의 문제로, 나아가 우리 자신의 문제로 승화해 문학적으로 앓아 낸, <피어라 돼지>(문학과지성사)가 ‘죽음’의 문명 속에서 희생되는 타자(대상)의 처절한 죽음을 문제 삼는다면, 이 시집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주체인 내 속에 살아 움직이는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이를 두고 문학평론가 조재룡은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이 시집은 ‘지금-여기를 떠도는 죽음의 외투를 입은 채, 공동체의 유령이 되어… 망각에 저항하고자 기억에 수시로 구멍을 내며… 보이지 않는 보임을, 그 순간의 광휘를, 달아나는 울음과 새어 나오는 비명을 담아낸 목소리의 기록’으로 읽어야 한다.”
타인의 죽음을 어두운 밀실로 밀어 넣고는 애써 밀봉하려는 사회, 조재룡은 계속해 다음과 같이 이 시집의 의미를 분석한다. “우리 사회의 한복판에 당도한 죽음의 시간 속에서, 죽음의 살점들, 죽음의 아우성을 매만지는 지금-여기, 죽어야 할 수 있는 말이, 죽으려 하는 문장이, 망자-산 자의 구분을 취하하는 문자가, 너-나의 말, 사자死者가 된 여인의 절규가, 공동체의 폭력과 공동체의 신음이, 너-나의 참혹이, 세계를 노크하고, 검은 문을 열어 우리 곁에 사死-생生의 목소리를 피워낼 것이다.”

문학실험실이 준비한 <틂-창작문고> 시리즈의 첫 번째 책
김혜순 시인의 <죽음의 자서전>은 2015년 한국문학의 질적 발전과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하기 위해, 도전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언어 탐구의 작업들을 기획하고 실천해나갈 독립 문학 공간으로 출발한 문화예술 공익 법인인 문학실험실에서 출간하는 첫 단행본으로서도 그 의미가 상당하다. 앞으로 문학실험실에선 실험 정신이 발현되는 창작 작업을 지속해 지원할 계획이며, <틂> 시리즈를 새로운 문학의 거주공간으로 구축해 장르를 나누지 않고, 시, 소설, 희곡, 텍스트실험 등을 출간해갈 예정이다. 소설은 연작 형태의 단편 3~4편을 묶거나, 중편 소설 등이 선보일 예정이고 장르를 극복한 ‘텍스트 실험’과 그간 문학 현장에서 외면받아온 ‘희곡집’도 문학의 이름으로 과감하게 출간할 예정이다. 문학실험실의 <틂> 시리즈는 정성을 다한 양장 제본으로 꾸며졌지만 무겁지 않은 판형으로 가볍게 지니고 다니며, 어디서든 읽은 수 있는 우리 시대의 새로운 교양서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6월 중 김종호 소설가의 연작 소설집 <디포의 디포>가 출간 예정이며, 이후 김선재(소설), 김태용(텍스트실험), 성기완(시), 이준규(시), 진연주(소설), 한유주(소설) (이상 가나다순) 등이 출간될 예정이다.

시인의 말

아직 죽지 않아서 부끄럽지 않냐고 매년 매달 저 무덤들에서 저 저잣거리에서 질문이 솟아오르는 나라에서, 이토록 억울한 죽음이 수많은 나라에서 시를 쓴다는 것은 죽음을 선취한 자의 목소리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 시를 쓰는 동안 무지무지 아팠다. 죽음이 정면에, 뒤통수에, 머릿속에 있었다. 림보에 사는 것처럼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가 갔다. 뙤약볕 아래 지구의 여름살이 곤충들처럼 고통스러웠다. 고통만큼 고독한 것이 있을까. 죽음만큼 고독한 것이 있을까. 저 나무는 나를 모른다. 저 돌은 나를 모른다. 저 사람은 나를 모른다. 너도 나를 모른다. 나도 나를 모른다. 나는 죽기 전에 죽고 싶었다.
잠이 들지 않아도 죽음의 세계를 떠도는 몸이 느껴졌다. 전철에서 어지러워하다가 승강장에서 쓰러진 적이 있었다. 그때 문득 떠올라 나를 내려다본 적이 있었다. 저 여자가 누군가. 가련한 여자. 고독한 여자. 그 경험 다음에 흐느적흐느적 죽음 다음의 시간들을 적었다. 시간 속에 흐느끼는 리듬들을 옮겨 적었다. 죽음 다음의 시간엔 그 누구도 이름이 없었다. 칠칠은 사십구라고 무심하게 외워지는 것처럼, 구구단을 외우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처럼 이 시를 쓰고 난 다음 아무것도 남지 않기를 바랐다. 연구년 동안에 이 시들 중 대부분을 적었다. 원치 않는 결혼을 피하기 위해 죽어버린 옛 여자들처럼 죽음을 피하기 위해 죽음을 먼저 죽은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시 안의 죽음으로 이곳의 죽음이 타격되기를 바랐다. 이제 죽음을 적었으니, 다시 죽음 따위는 쓰고 싶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 시집(49편의 시)을 한 편의 시로 읽어줬으면 좋겠다.

(김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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