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나.비.바람 _ 정재혁 포토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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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누.나.비.바람.

갈대밭이 있다. 갈대가 바람에 흔들린다. 비가 내릴 것 같다. 오늘은 우산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갈대밭은 아니다. 박물관 2층 창문 안에서 보는 바깥쪽, 옥상 조경이 갈대밭처럼 보일 뿐이다. 흔들리는 것이 갈대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억새일지도 모른다. 둘의 차이를 잘 모르겠는데, 갈대가 먼저 생각난 뒤에 억새가 떠오른다. 어쨌거나 창문 안에서 나는 바깥을 본다. 나는 보고 있다. 생각을 멈추고 보고 있다.

비누를 생각한다. ‘비누에서는 냄새가 나지 않았다, 비누는 매일 닳아가는데 나는 그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로 시작되었을 글은, 아마도 바깥을 보지 않았다면, 바람이 불지 않았다면, 갈대가 없었다면, 생각이 계속되었다면, 이 글 대신 여기에 있었을 것이고 당신은 그것을 읽고 있었을 것이다.

비누 거품 같았다고 쓰려고 보니 꼭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지금 떠오른 생각이다. 어쨌거나 내가 바라보는 저 모습을 나는 비누 거품 같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사진 01)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는 자연에 대한 비유가 싫었다. 물에 말은 맨밥처럼 밍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c‘est la vie(이게 인생이다)’나 ‘이게 야구죠(야구 몰라요?)’ 같은 말은 어디에 써도 잘 어울린다. 여전히 갈대와 여자의 비유는 식상하다. (사진 02)

그때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다. 내가 갈대를 보기 전에 봤던 것 때문에 그 말이 떠올랐다. 1층에서 노(能) 가면을 보았다. 전시관 입구에 무시무시한 가면이 있었다. 뿔이 난- 외양뿐 아니라 비유적인 의미로도 그러한-도깨비처럼 생긴 가면의 이름은 한냐(般若)였다. 리플릿에는 여인의 질투와 집념이 지나쳐 신체와 영혼이 분리된 상태인 생령(生靈)의 모습을 표현했다고 쓰여 있다. 일반적인 여자의 얼굴이라는 고히메(小姬)와 한냐(般若) 사이는 너무 멀고 달랐다. 하지만 살아 있는 남자는 가면을 쓰지 않는다. 가면을 쓴 남자는 죽은 자이다. (사진 03)

다시 비유로 돌아가서 갈대의 편을 들자면 (사진 05)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갈대는 이상하다. 꿈속이 아니다. 계속 바깥을 지켜보았는데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갈대는 없다. 갈대만이 아니라 모든 것이 흔들린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은 바람뿐일까. 바람이 아니라서 나도 흔들리기로 했다. (사진 06)

셔터를 누르는 순간의 풍경은 그때는 미처 보지 못한 풍경이다. (사진 07)

내가 카메라를 흔들지 않으므로 갈대만 흔들린다. 바람이 분다. (사진 08)